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레디 머큐리 (문단 편집) === 프론트맨으로서 === > '''Did rock and roll ever have a better showman than Freddie Mercury?'''[* 프레디 머큐리를 최고의 락 프런트 맨 2위로 선정하면서 남긴 코멘트. 록 역사상 최고의 프론트맨을 꼽을 때 절대로 순위권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다. 여담으로 1위는 [[브루스 스프링스틴]]. [[https://www.billboard.com/photos/6721847/best-rock-singers-of-all-time|출처]]] > '''(락앤롤 역사에 프레디 머큐리를 능가하는 쇼맨이 있었는가?)''' >---- > '''[[빌보드]]''', The 25 Best Rock Frontmen of All Time > '''세상에 나타난 모든 프론트맨 중 가장 위대한 사람은 프레디 머큐리가 분명하다. 그의 음역대, 카리스마, 존재감 그 모든 것이 프론트맨 그 자체였다.''' >---- > [[디스터브드]] 데이비드 드레이먼, 플래닛 록과의 인터뷰 중에서 [[https://www.hayarobi.zone/324|#]] 프레디는 단순한 가창력 좋은 보컬리스트란 평가를 넘어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프론트맨]]중 한 명'''이자 라이브 공연계의 '''본좌'''로 평가받는다.[* 보통 ‘최고의 프론트맨’을 꼽지면 [[믹 재거]], [[로저 달트리]], [[재니스 조플린]], [[브루스 스프링스틴]], [[짐 모리슨]], [[지미 헨드릭스]], [[로버트 플랜트]], [[리암 갤러거]] 등과 함께 절대 빠지지 않는다.] 퀸이 같은 록 밴드, 아니 [[대중음악]]계 전체를 통틀어서도 역사상 최고의 라이브 뮤지션 가운데 하나라는 평을 받는데는 프레디의 폭발적인 무대 장악력이 가장 큰 기여를 했다. 프레디는 [[더 후]]의 어마어마한 팬이었기에, 더 후가 추구하던 파괴적인 무대 매너에 영향을 받아 무대 위에서 온갖 폭발적인 퍼포먼스를 하면서 관중들을 조련하였다.[* 그래도 더 후처럼 악기를 부수거나 하지는 않았다. Sheer Heart Attack을 연주할때 스피커를 쓰러뜨리는 정도.] 또한 프레디 머큐리는 [[레드 제플린]], 특히 [[로버트 플랜트]]의 광팬이었기에, 프레디 사후 [[브라이언 메이]]의 인터뷰에 따르면 프레디는 라이브 공연에서 언제나 로버트 플랜트처럼 행동하려고 했다고 한다.[* 다만 프레디의 실제 성격은 소심하고 수줍음이 많았기에, 브라이언 메이는 프레디가 로버트 플랜트처럼 행동하더라도 그 이면에는 불안감과 수줍음이 묻어나오는 것이 보였다고 한다.] 그 외에도 [[롤링 스톤스]]의 프론트맨인 [[믹 재거]]의 영향 또한 받았다고 한다. 특유의 연극적이고 화려한 동작들과 관객 유도 기술을 바탕으로 퀸이 수만의 관객을 아우르는 스타디움 공연을 해나가는 데에 매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프레디 머큐리의 무대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연은 1985년 라이브 에이드로, 그는 전세계의 내로라하는 뮤지션들이 총출동한 자리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로 단연 두각을 드러냈다. 기획자인 밥 겔도프[* 라이브 에이드의 기획자로, [[핑크 플로이드의 벽]]에서 주인공 핑크를 연기한 사람이기도 하며, 사실 이 사람도 그리 히트를 치지 못했지만 엄연한 뮤지션이다. 아일랜드의 펑크 밴드 Boomtown Rats의 보컬리스트로 활동했었다.]는 '그날 공연한 밴드 중에서 그냥 퀸이 최고였다'라고 평했고, 같은 공연에 출연한 [[엘튼 존]]이 퀸의 공연 이후, 프레디의 트레일러로 가서 'You bastards, you stole the show[* 한국식으로 번역하자면 '이 자식들아, 니들끼리 다 해먹냐?' 정도.]'라고 항의 아닌 항의를 하며 농담했다.[* [[https://medium.com/udiscover-music/queens-live-aid-performance-how-rock-s-royalty-stole-the-show-22d155c39447|Queen’s Live Aid Performance: How Rock’s Royalty Stole The Show]]] 당시 라이브 에이드 공연 특성상 모든 아티스트에게 20분의 시간만 주어졌고 퀸의 콘서트에 평소 사용하는 조명, 특수효과 장치 같은 것은 전혀 쓸 수 없었기에, 이 날의 공연은 오직 프론트맨인 프레디의 무대매너로 관객들을 매료해야만 했다. 그리고 실제로 프레디는 '''그걸 해냈다.''' 당시 [[U2]]나 [[듀란 듀란]]과 같은 신진 세력들에 밀려 슬슬 동력이 떨어진 듯 보이던[* 실제로 퀸은 [[Hot Space]]을 기점으로 나름의 하향세를 타고 있었다.] 퀸을 다시금 정상으로 올려놓은 공연이었다. 특히 밴드의 피아니스트[* 키보드가 아닌 그랜드 피아노로 연주하므로 키보디스트로 서술하지 아니하였다.]라는 특성 때문에 세션 피아니스트를 고용하기 전인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프레디는 공연 거의 대부분을 피아노 앞에 앉아 있어야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을 휘어잡고 조련하는 능력이 출중했다는 것은 얼마나 그가 비범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편 프레디의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인 받침대 없는 마이크[* 이 마이크의 유래는 다분히 우연적이었다. 프레디의 퀸 이전 소속 아마추어 밴드였던 Wreckage 공연에서 마이크를 스탠드에서 분리하던 중 스탠드가 부서지며 마이크에 막대기가 달린 채 분리되어 버렸고, 프레디는 얼떨결에 생겨난 이 새 유형의 마이크를 마음에 들어해 이후 공연에서도 계속 쓰게 된 것이다.][* 이는 후대에도 전승되어 후배 밴드인 [[건즈 앤 로지스]]의 보컬 겸 프론트맨 [[액슬 로즈]]가 받침대 없는 특이한 형태의 마이크 스탠드를 쓰기도 했다.]는 무대 위에서 지휘봉이나 [[에어 기타]] 등등 다양한 용도로 쓰이며 프레디의 퍼포먼스에 볼거리를 더해주었다. 오늘날 그를 존경하는 많은 후배 뮤지션들은 서있는 것 조차 부담백배인 10만명 청중 앞에서 쫄기는 커녕 확 제압해버리는 무게감과 그 열정적인 무대 매너를 존경의 요인으로 뽑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라이브 에이드 공연은 그 임팩트 때문에 대형 공연의 교과서처럼 여러 뮤지션들에게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다. 퀸에 뒤늦게 빠진 팬들은 무대에서 마치 거인과 같은, 강렬한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다. 프레디가 그처럼 인상적인 무대 매너와 쇼맨쉽을 보일 수 있었던 건, 단지 퍼포먼스 면에서의 기교와 재능 때문만이 아니라 관객의 환호를 이끌어내는걸 좋아하고 그들과 같이 호흡하는 걸 즐길 줄 아는 타고난 무대체질이었다는 점이 근본적인 요인이었다. 뛰어난 록 뮤지션이라 해서 모두가 청중앞에서의 공연을 좋아하는 무대체질인 건 아니다. 프레디와는 정반대로,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를 오히려 부담스러워 하고 많은 청중 앞에서의 공연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록 보컬리스트의 대표적인 예로 [[커트 코베인]]이 있다. 그는 유서에서 자기는 프레디 머큐리처럼 공연에서 관객들의 열렬한 반응을 즐길 수 없으며, 그렇다고 해서 즐기는 것처럼 연기하며 사람들을 속이는 것도 싫으니 어찌하면 좋냐는 내용의 비통함을 적어 놓기도 하였다.[* 유서 중 해당 부분: "나는 당신들 누구도 속이기 싫다. 내가 공연할 때 100% 즐기는 척하며 속이는 건 (뮤지션으로서) 최악의 범죄라고 생각한다. 무대 위로 올라가기 전에 난 그것이 억지로 가야만 하는 직장 출근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I can't fool you, any one of you. The worst crime I can think of would be to rip people off by faking it and pretending as if I'm having 100% fun. Sometimes I feel as if I should have a punch-in time clock before I walk out on stage."][* 본인도 빌보드 선정 가장 위대한 프론트맨 순위에 이름을 올리긴 했지만 이건 사실 너바나라는 이름값으로 올라간 것이고 커트 코베인은 유능한 프론트맨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프레디는 공연이란 하나의 '쇼'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퀸 초기 때부터 적자를 보더라도 공연 조명과 의상에 예산을 가장 많이 쏟아부었다고 한다. 70년대 후반부터 등장하는 알록달록한 조명부터 후기에 사용하던 거대한 조명 장치 등 화려한 조명이 퀸 공연의 또다른 트레이드마크가 된 것은 이 때문이다. 70년대 초반에 멤버들이 입고 있는 괴상한 날개옷과 강렬한 화장도 모두 프레디의 취향이며, 다른 멤버들이 밝히길 프레디가 계속 이상한 옷들을 입으라고 강요해서 어쩔 수 없이 입게 되었다고. [[http://www.queenlive.ca/queen/live%20pics/73-11-02_London_01.jpg|#]] [[https://queenlive.ca/queen/live%20pics/74-03_UK_04.jpg|#]] [[https://queenlive.ca/queen/live%20pics/74-11-05_Sheffield_10.jpg|#]] [[https://queenlive.ca/queen/live%20pics/76-02-01_Philadelphia_09.jpg|#]] [[https://queenlive.ca/queen/live%20pics/75-03-30_San%20Francisco_09.jpg|#]] 공연 중간에 목을 풀 겸 독특한 소리[* 통상적으로는 Ay-oh,에-오라고 표기되며 부틀렉 등에선 Day-oh로 표기가 되곤 한다.]를 내며 관중들과 호흡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youtube(D5bzrb-v9Y0)] [[라이브 에이드]]때 시전한 관중 조련.[* 이어지는 곡은 Hammer To Fall] 말이라곤 Alright! 한 마디만 하고 전부 의미를 알 수 없는 허밍만 하는데도 10만 관중이 아주 자연스럽게 프레디를 따른다. 이렇게 프레디가 관중을 조련할 때 치는 "'''Eh~Oh!'''"는 프레디를 상징하는 멘트 중 하나. [youtube(OVzvoPP6M50)] 1986년 웸블리 공연 도중 관중을 지휘하는 영상. [[Under Pressure]] 시작 전의 그 유명한 관중 조련. 위에서 서술되어 있다시피 웸블리 공연 당시 프레디의 컨디션은 최악이었음에도 전설의 장면을 연출한 것을 보면 그가 최고의 프론트맨으로 평가 받는 이유를 알 수 있다. [youtube(YzoyDILKlhY)] 이 관중 조련은 78년 재즈 투어때부터 시작되었고, 심지어 그가 죽은 이후에도 추모공연이나 [[2012 런던 올림픽]] 폐막식 등에서 스크린에 나온 그의 생전 공연 음성을 관객들이 따라부르는 장면을 연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